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힘이 들고 괴로워서 견디기 어려운 일들이 있습니다. 특히 힘이 있는 사람들로부터 당하는 일들이 있을 때 더 그렇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향해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주님의 강림 때까지 길이 참으라고 하십니다(7~8).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고 했습니다. 농부가 곤궁함 중에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소출을 기대하듯이 성도들도 이 세상에서의 삶이 고되더라도 장차 오실 주님을 기대하며 인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참으라는 것입니까? 세상의 탐욕적인 사람들의 강포함과 의인에 대한 정죄를 참으라는 것입니다. 탐욕적인 사람들은 1절에 나타난 ‘부한 자들’입니다. 이들은 자신의 일에 고용한 사람들의 일당도 갈취하는 포학한 사람들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이 세상과 어떤 조직 안에서든지 이런 강포한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이런 사람들의 강포와 정죄를 참으라고 하십니다. 왜 참아야 합니까? 첫째, 이 세상은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은 낙원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붙잡는 사람들과 하나님을 뿌리치는 사람들이 씨름하는 세상입니다. 그러므로 물고 물리는 일이 있음을 알고 인내할 줄 알아야 합니다. 둘째, 심판의 날이 있기 때문입다. 세상은 그렇게 강포한 사람들이 계속 성공하고 승리하고 잘 되는 곳만은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심판의 날이 있고, 억압을 당한 사람들에게는 위로의 날이 올 것입니다. 그 날은 주님의 강림하시는 날입니다.
이 세상에서 길이 참기를 명령하신 하나님 앞에서 힘써야 할 삶이 있습니다. 그것은 서로 원망하지 않고 사는 것입니다(9).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주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를 온전히 심판할 수 있는 존재는 판사와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이 어떤 일을 옳게 처리한다고 해도 우리 속마음을 다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인생 전반을 공정하게 판정하고 심판하실 분은 바로 우리 죄를 짊어지신 예수님뿐이십니다. 요5:22절에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다”고 했습니다. 왜 원망하지 않아야 합니까? 첫째, 인내하라는 명령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원망이 터지는 때는 인내하지 못할 때입니다. 둘째, 심판주가 가까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심판하실 예수님은 문 앞이라는 가까운 데 계십니다. 어떻게 원망하지 않으며 살 수 있습니까? 선지자들의 삶을 본 받는 것입니다. 선지자들이 원망하지 않고 살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품었기 때문이다. 신약시대 하나님의 종들도 하나님의 마음 즉,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살았기에 심한 핍박과 생활의 어려움 속에서도 길이 참으며 살 수 있었습니다. 세상을 사는 동안 우리가 해야 할 분명한 일은 인내하는 것임을 마음에 새기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