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랑과 위로를 나누기보다 오히려 하나님에 대한 증오나 혐오를 갖게 만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는 삶을 살기를 바라시는 분입니다(26). 나발이라는 사람의 부인이었던 아비가일은 다윗을 향해 “... 내 주의 손으로 피를 흘려 친히 보복하시는 일을 여호와께서 막으셨다”고 했습니다. 다윗과 그 무리는 자신들이 나발의 사람들과 재산을 지켜준 일로 나발에게 식량 얻기를 구했지만 면박을 당했습니다. 그 일로 다윗은 분노했고 나발 가문을 몰살하기 위해 나발의 집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아비가일은 하나님의 뜻을 다윗에게 비추게 되었습니다. 다윗의 손에 피를 묻혀 복수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자신을 통해 드러내셨다는 것입니다. 사실 삼상17:47절에서 다윗은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라고 말했던 사실이 있습니다. 그런 사실을 잃어버리고 분노했던 다윗에게 아비가일은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었고, 다윗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보복의 결심을 돌이키게 되었습니다.
아비가일을 통해 나타내시는 하나님의 뜻은 첫째, 다른 사람의 죄를 자신의 책임으로 여기라는 것입니다. 아비가일은 자기 남편의 죄와 허물을 자신의 책임으로 돌리는 지혜를 가졌습니다. 둘째, 구원 받은 사람 안에도 하나님께 버림받을 교만의 요건이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죽이려고 군대를 이끌고 나선 사울 왕처럼 다윗 자신도 나발을 처치하려는 교만이 있었던 것입니다. 셋째, 인생의 시선을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로 돌리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당시 자신의 시선을 하나님이 아닌 나발이라는 사람에게 맞추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쉽게 대할 수 있을 것 같은 사람과 우리가 충분히 처리해 버릴 수 있을 것 같은 문제에 시선을 고정시키지 말고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며 살기를 바라시는 하나님 앞에서 힘써야 할 삶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교제의 자리에 나아가는 것입니다(30). 아비가일은 “여호와께서 내 주에 대하여 하신 말씀대로 모든 선을 내 주에게 행하사 내 주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실 때에”라고 했습니다. 아비가일은 분명히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듣고 알고 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교제의 삶이 되고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교제의 삶을 살던 아비가일을 하나님의 구속사역에 사용하여 주시고, 자기 가문을 멸망의 자리에서 건짐을 받게 하셨을 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지도자를 허물과 오점을 남길 인생에서도 벗어나게 하는 지혜를 발휘하게 하셨습다. 울림의 성도 모두 만나는 사람들 앞에서 아비가일처럼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는 삶을 살아가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