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자기를 규정하는 대상으로 삼고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나’라는 존재는 ‘너’라는 대상을 통해서 정의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여기서 ‘너’ 라는 대상이 세상의 것들이 되면 자신을 잘못 규정하고 살게 됩니다. 성경은 이것을 죄라고 합니다. 사람이 이런 죄 문제를 해결받지 못한 상태로 열심히 살면 살수록 인생은 더 힘들고 고달프게 됩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대상으로 자신을 규정하기를 원하십니다.
자기 스스로를 규정하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라는 진리를 보여주셨습니다(1~4). 요한 사도는 예수님이 제 2위격을 가지신 성자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요한복음을 기록했습니다. 그래서 말씀이 곧 예수님이라고 밝힌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을 구속하기 위한 하나님의 뜻을 가장 잘 드러내는 표현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안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것이 됩니다.
우리는 말씀이신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고 우리 자신을 규정하는 대상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먼저, 말씀이신 예수님은 만물의 창조 전에 계신 영원성을 가진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우주역사에 갑자기 나타나신 분이 아니라, 이 세상의 역사가 시작되기도 전부터 선재하셨던 분입니다. 그리고, 말씀이신 예수님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인격성을 가진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구약시대에도 성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바탕으로 하나님의 계시를 전달하시는 사역을 주로 담당하셨습니다. 끝으로, 말씀이신 예수님은 하나님을 자신과 동등으로 표현하시는 신성을 가진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피조물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았던 때도 없는 분이십니다.
말씀이 곧 하나님이심을 밝히신 하나님 앞에서 순종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의 빛이 되시는 말씀을 받고 사모하며 사는 것입니다(7).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생명이 있었습니다. 이 생명은 사람들에게 빛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말씀이신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 흑암의 세계에 빠져 살고 있었고, 어둠의 권세에 사로잡혀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악으로 어두운 세상에 오셨지만 어둠 속의 사람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한이라는 사람을 세상에 보내신 이유가 있습니다. 자기 죄악과 불신앙으로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깨닫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그 빛을 증언하여 믿도록 요한을 보내신 것입니다.
이 세상은 여전히 어둡습니다. 흑암의 권세 아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죄와 불신앙으로 인해 진리를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는 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우리는 생명의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사람들의 주변에서 믿음을 얻기 위해 살아야 합니다. 나아가 자신 역시 빛 되신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들이 믿음을 갖도록 돕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