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을 무시하거나 구원에 대해 불안한 마음으로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불확실하거나 불안한 자신의 구원문제를 확신하기 위해 인간적인 노력과 정성을 들이는 행위를 의지하려고 합니다. 니고데모 같은 사람도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이 거듭나야 한다는 말보다는 자신이 그렇게 공들이고 노력하고 정성을 들여 지킨 율법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에 충격을 받은 것입니다.
구원의 길을 모르거나 구원의 길을 자신의 노력과 행위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구원이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5). 물로 거듭난다는 말은 구원에 합당하지 않는 몸을 물로 씻어 깨끗이 하는 세례를 받는 것을 말하고,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말은 구원에 합당하지 않은 내면을 성령님의 사역으로 신령하고 새롭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한 마디로 거듭난다는 말은 성령으로 새로운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거듭남은 우리의 존재 자체를 바꾸는 것입니다. 세상의 존재에서 하늘의 존재로 바꾸는 것입니다. 절망하는 존재에서 소망하는 존재로 바뀌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새로운 사람이 되지 않고는 거듭나는 것,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 구원 받는 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하는 것이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게 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삶을 잘 사는 것입니다(14~15).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사단의 유혹을 따라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죄로 타락한 인간을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들려질 것을 예표하는 말씀입니다.
민수기 21장의 이 놋뱀사건은 정확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는 사건입니다. 이 세상의 사람들은 불뱀인 사단에 물려 죽음의 고통을 당하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놋뱀으로 상징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 장대에 달아매셨습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바라보고 믿는 사람은 구원을 받게 하시겠다는 약속을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믿는다’는 말의 의미는 일회적인 고백으로 끝나는 말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지속되는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되 기분 따라 믿거나, 상황 따라 믿지도 말고, 감정 따라 믿는 척하는 생활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믿는 것은 쉬운 것입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구원의 길이 너무 쉽다보니 믿지를 못하겠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전히 자기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고, 기여해야 하고, 노력해야 하나님께도 미안함이 없이 구원을 떳떳하게 받을 수 있을 것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단의 속임수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거듭남의 체험을 하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