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삶을 원하지만 이전의 낡은 생각과 행동을 버리지 못해서 받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나님을 섬기지만 삶의 필요가 채워지지 않고 소유가 사라져 가는 괴로움 중에서 새로운 삶을 바라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결핍과 단절과 피곤한 삶에서 새로워지기를 바라는 사람에게 울어야 한다고 하십니다(13). 굵은 베옷을 입고 슬피 울라는 말과 밤이 새도록 누우라는 말은 통곡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앞에 유다 백성의 타락 극심해 지자 하나님은 그 땅에 극심한 기근이 들게 하셨습니다. 먹을 것이 없게 하시고 기쁨과 즐거움이 끊어지게 하셨고, 뿌린 씨앗이 썩고 창고가 비게 하셨습니다. 가축도 먹을 것이 없고 피곤하고, 목장의 풀과 나무가 불타 없어졌으며, 들짐승도 주리고 시내물이 마르며 들의 풀도 불에 타 사라지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먹을 것이 없고 소유가 사라지다 보니 당연히 백성들로부터 받아서 제사를 드려야 하는 제사장들도 제사를 드릴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슬피 울라고 하셨습니다. 통곡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목적은 더 슬픈 심판의 날 여호와의 날이 오기 전에 울며 통곡함으로 이전의 삶에서 돌이키라는 것입니다. 더 큰 괴로움을 피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남유다 백성은 요엘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경고하심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 통곡함으로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결국 기원전 586년 바베론에 의한 멸망을 당함으로 여호와의 날, 심판의 날이라는 더 튼 고통을 맞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 삶을 돌이키기를 바라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먼저, 삶에서 나타나는 문제들이 우연이라는 생각을 버리며 살아야 합니다(15). 먹을 것을 걱정해야 하고, 삶에 기쁨과 즐거움이 없고, 뿌린 씨가 자라지 않고, 창고가 점점 비어져 가고, 시냇물이 마르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18절에 양 떼도 피곤하다고 했는데, 여기서 피곤하다는 히브리 말은 ‘야샴’인데, 이 말은 ‘죄의 값으로 벌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남유다에 일어난 일이 우연이 아닌 것처럼,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도 우연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다음, 새로운 삶을 위해 돌이키려면 금식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14).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서 어긋나서 생기는 결핍과 고통은 회개할 때만 해결될 수 있습니다. 인생의 큰 결핍과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것 뿐 아니라, 더 괴로움과 상실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전능자이신 여호와께 부르짖어야 한다. 부르짖음의 최상의 표현은 금식하므로 부르짖는 기도입니다.
새로운 2016년을 맞이하기 위해서 무엇을 돌이켜야 할지 생각된 것이 있다면 금식하고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