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를 다니는 사람들 중에서도 예수님을 자신의 주님으로 모시지 못하고 사는 분들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그 뜻대로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인생을 살 수 있는 길에 대한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우리 인생의 주님으로 보내주셨습니다(8). 삭개오라는 사람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만난 후에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 수 있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었습니다. 다시말해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고서야 비로소 구원받은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삭개오는 여리고라는 상업도시에 살던 사람으로서 세리장이었고 부자였습니다. 그는 자기자신을 인생의 주인으로 삼고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은 고사하고 자기 유대민족의 뜻대로 살지도 못했습니다. 단지 자기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자신의 소리만을 따라서 살았던 사람입니다. 삭개오의 생활에는 돈은 있었지만 마음은 늘 큰 구멍이 나 있었습니다. 가난하고 억압을 받기는 하지만 다른 유대인들처럼 서로 사랑하고 의지하는 끈끈한 삶의 관계를 맺으며 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생기는 마음의 빈자리는 돈으로 채워지지 않는 공간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리고를 지나가시던 예수님을 만난 삭개오는 자신이 주인이 되어 살아왔던 인생을 마무리하고 예수님을 자기 인생의 주님으로 또 주인으로 모시게 되었습니다. 삭개오가 속여 빼앗은 것이 있으면 네 배나 갚겠다고 선언한 것은 불법 유무를 떠나 예수님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불의한 사람인가를 인정했던 것입니다. 진정으로 주님을 만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행동이었습니다. 이후로 삭개오는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도 또 사람을 위해서도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신 결과 예수님은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라는 놀라운 선언을 하십니다. 삭개오 개인뿐 아니라, 그 구원이 삭개오의 집안 가족들에게도 이르게 되는 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런 복을 주시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기 위해서 우리가 순종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께 대한 무관심을 버리며 살아야 합니다(3). 예수님에 대한 관심이 있는 사람이 자기의 주님을 만날 가능성이 많습니다. 예수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신다는 말은 여리고에 머물 계획이 없이 단순히 거쳐서 지나가시고자 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알고자 하는 삭개오라는 사람의 관심 때문에 그곳에 머무르게 되셨고 삭개오는 인생의 주님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다음으로, 예수님이 오신 목적을 받아들이며 사는 것입니다(10). 예수님의 관심은 하나님에게서 떨어졌던 사람을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데 있습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만나고 삭개오는 돌아온 탕자처럼 하나님을 기쁘게 만들었고 자신은 평안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자신의 주님으로 삼은 사람에게 구원의 복을 가족 모두와 함께 누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평안을 누리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