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해야 자기 생명이 잘 되는지를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결과 눈에 보이는 재물을 제일 가치로 좇아 살고, 눈에 잘 되어 보이는 세상일에만 관심을 집중하여 살아기도 합니다. 자기 생명이 잘 되는 길을 걷고자 하는 사람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생명의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십니다(15하). 소유물로 자기 인생이 만족하게 될 것이라고 여긴 사람의 생각에 일침을 놓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에게 있어서 삶의 최우선의 관심은 영혼의 문제였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물질 욕심에 뿌리를 두고 살던 어떤 사람의 세속적인 문제에 이용당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사람의 생명이 소유에 달린 것이 아님을 지적하시면서 보다 근원적인 영적인 문제로 그 사람의 관심을 돌려주신 것입니다. 사람의 생명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에 속해 있습니다. 생명이 부여되어서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도 하나님의 주권이며, 이 세상에서의 생명이 끝나는 것도 하나님의 주권이며, 이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만난 영혼이 구원되는 것도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인생의 가장 큰 문제가 하나님의 주권 안에 있는 것이라면 세상을 사는 동안의 만족도 하나님의 주권에 달린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복된 삶의 시작이 될 것입니다.
자기 생명을 잘 되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가 순종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먼저, 모든 탐심을 물리치며 살아야 합니다(15상). 그것은 물질뿐 아니라 감정의 만족을 위한 욕심까지도 포함하는 것입니다. 이런 탐심에 빠진 사람은 영적으로 소경이 되어 영의 세계를 볼 수 없을 뿐 아니라, 물질과 명예와 육신적 쾌락에 빠져 살게 됩니다. 다음으로,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21).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사람은 반대로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으며 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람은 두 가지 중에 하나를 믿고 사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을 믿든지, 아니면 하나님 아닌 것을 믿고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닌 것을 믿고 사는 사람이 대표적으로 집착하는 것이 재물이며, 명예이며, 인기이고, 자기 자신입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라는 것은 하나님께 대하여 인색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적 복을 자기를 위해 쌓는 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어려운 사람을 위해서 사용하며 살아가라는 말입니다.
세상을 두려워하면 세상의 소유에 집착하게 됩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서 불타 없어질 들풀도 하나님께서 입히시는데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구하지도 말고 근심하지도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약속을 주시는 예수님을 믿고 순종함으로 자기 생명을 잘 되도록 하는 길을 걸어가기를 축복합니다.